나태주 시선집 3 (하늘의 서쪽)
나태주 시선집 3
하늘의 서쪽
아름다운 사람
아름다운 사람
눈을 둘 곳이 없다
바라볼 수도 없고
그렇다고 아니 바라볼 수도 없고
그저 눈이
부시기만 한 사람.
(1986. 1. 24)
나머지
그대 내게
주는 것 있다면
오래 간직해도 변하지 않는 것
부끄럽지 않은 것만 받겠습니다
나머지는 고스란히
돌려받으시지요.
(1985. 1. 10)
가질 수 없어
가질 수 없어
갖지 않는 것은
갖지 않는 것이 아니다
가질 수 있어도
갖지 않는 것이 정말로
갖지 않는 것이다.
(1986. 5. 16)
욕심
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지
비어 있는 나의 잔
다 알아서 주시는 분이 계시는데
투정을 부리지 말아야지
나의 자리 낮음과
가난함과
나약함과
무능함
괜찮다 괜찮다
고개 끄덕여 주시는 분이 계시는데.
(1985. 12. 23)
인사
우리 마음 변하지 말고 삽시다
그 말부터가 벌써
마음 변했다는 증거.
(985. 8. 5)
그가 섭섭하게 대해줄 때
그가 섭섭하게 대해줄 때
내게 잘해 준 일만 생각합니다
그가 미운 마음 가질때
나를 위해 기도해 준 일 생각합니다
그가 크게 실망하고 슬퍼할 때
작은 일에도 기뻐하던 때 되새깁니다
그가 늙고 병들어 보잘 것 없어질 때
젊어 예쁘던 때를 기억하겠습니다.
(1986. 12. 28)
편지
하루의 좋은 시간을
다른 곳에 다 써먹고
창문에 어둠 깃들어서야
그댈 생각해 낸다
그댈 생각하고
그대에게 편지를 쓴다
너무 섭섭히 생각 마시압.
(1986)
들길을 걸으며
1
세상에 와 그대를 만난 건
내게 얼마나 행운이었나
그대 생각 내게 머물므로
나의 세상은 빛나는 세상이 됩니다
많고 많은 사람 중에 그대 단 한 사람
그대 생각 내게 머물므로
나의 세상은 따뜻한 세상이 됩니다.
2
어제도 들길을 걸으며
당신을 생각했습니다
오늘도 들길을 걸으며
당신을 생각했습니다
어제 내 발에 밟힌 풀잎이
오늘새롭게 일어나
바람에 떨고 있는 걸
나는 봅니다
나도 당신 발에 밟히면서
새로와지는 풀잎이면 합니다
당신 발에 여리게 떠는
풀잎이면 합니다.
(1987. 9. 14)